스웨덴의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성인 라비아(가명)는 최근 고열 증세가 나타나 의사를 찾아갔다. 병명은 코로나19였다. 라비아는 처방전을 받아왔다. 하지만 처방전에 적힌 그녀의 이름을 본 남편으로부터 “낯선 남자에게” 이름을 밝혔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
영국 방송 BBC는 25일(현지시간) 라비아의 사례를 언급하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이 가족 외의 사람들, 심지어 의사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밝혀서는 안 된다는 구시대적인 관습이 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이름이 있어도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다. 아프간 남성들은 공공 장소에서 부인, 어머니, 누이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꺼린다. 여성은 일반적으로 장남의 어머니, 누군가의 딸이나 누이로만 지칭된다. 여성의 이름을 밖에 알리는 걸 수치로 여기기 때문에 결혼을 해도 청첩장에는 여성의 이름은 적지 않는다. 여성이 병들어도 처방전에 환자의 이름을 적어선 안 되고, 죽어도 사망증명서나 묘비에 이름을 적어선 안 된다.
아프간 법률은 출생증명서에 아버지의 이름만 기재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어머니의 법적 권리를 제한한다. 싱글맘이 아이의 여권과 같은 신분증을 등록하려면 이를 보증해줄 남자 친척이 있어야 한다. 두 아이의 엄마인 아프간 여성 가잘 샤리피는 자유아프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 아이의 출생신고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호소했다. 출생등록기관은 아이 등록을 위해 그녀의 매부, 심지어 조카의 이름까지도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엄마인 그녀의 이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권리를 위해 2017년부터 아프간 여성들은 ‘내 이름은 어디에?(Where is my name?)’ 운동을 벌여왔다. 나히드 패리드 아프간 국회의원은 “신분증에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름이 적히고 어머니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것은 여성에 대한 폭력 행위”라고 비판했다. 3년이 지난 최근에야 이 운동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여성도 신분증과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인구등록법’을 개정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 개정안은 오는 9월 재개되는 아프간 국회에서 통과될 확률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스웨덴의 아프간 난민 사하르 사메트는 “내 이름은 어디에?” 운동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소셜미디어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나는 내 이름을 사하르라고 쓰는 것이 자랑스럽다. 내 어머니의 이름은 나시메, 외할머니의 이름은 샤하두, 친할머니의 이름은 후쿠라지다.”
‘이름 되찾기’는 작은 첫 걸음일 뿐이다. 영국에서 의학물리학자로 일하는 샤카르도흐트 자파리는 “많은 아프간 여성들이 여전히 의사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는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학대받는다”며 “아프간 여성들이 독립하려면 경제적·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패리드 의원도 “여성에게 법률 서류 등록권뿐만 아니라 노동권, 교육권, 기타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July 26, 2020 at 02:0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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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묘비에도 이름 없는 아프간 여성들, “#내 이름은 어디에?”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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