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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청년의 유언을 지켜온 순간들 50장면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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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50년, 여기 다시 전태일들]
전태일 이후 50년 노동사 50장면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유정숙, 정선희, 이숙희, 이순자, 김혜숙씨 등 청계노조 여성조합원들이 1975년 설날 사진관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전태일기념재단 제공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유정숙, 정선희, 이숙희, 이순자, 김혜숙씨 등 청계노조 여성조합원들이 1975년 설날 사진관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전태일기념재단 제공
대한민국 노동사는 전태일 열사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전태일은 대한민국 노동 현장의 참혹한 현실을 죽음으로 알렸고, 이후 수많은 ‘전태일들’의 싸움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조금씩 노동자들의 것이 됐다. <한겨레>가 오는 11월13일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지난 50년 동안 있었던 주요한 노동사 50장면을 뽑아봤다.
서울노동인권복지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제17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코로나19 사태 속 노동자들의 고통 해소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행위극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노동인권복지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제17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코로나19 사태 속 노동자들의 고통 해소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행위극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 1970년 11월13일 : 서울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 요구 항의 분신 22살 전태일은 평화시장 다락방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어린 여공들을 바라보며 잘못된 사회 현실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됐고, 인간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 도달하게 됐다. 1970년 11월13일, 그가 제 몸을 살라 외친 노동의 현실은 한국 노동운동을 새로운 단계로 이끌었고,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으로 역사를 이끌어야 한다는 기폭제가 됐다.
2. 1970년 11월27일 :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 결성 3. 1971년 1월21일 : 노동청, 16인 이상 고용 사업체 98.2% 근로기준법 위반 발표 4. 1973년 9월18일 : 삼립식품 1천여 노동자 임금인상 요구 파업. 파업 주동자 6명 첫 국가보위법 위반 구속 5. 1973년 12월1일 : 인천 부평공단 삼원섬유 노동자 120명 노조 활동 보장 요구 파업 6. 1974년 9월19일 : 울산 현대조선소 기능공 2만 5천여명 도급제 철폐 등 13개항 요구 격렬 시위
7. 1976년 7월24일 : 섬유노조 동일방직 인천지부 여공 5백여 명 회사의 어용노조화 반대하며 3일 농성 시작, 동일방직 민주노조 수호투쟁 사건 시작 8. 1977년 2월17일 : 대구지법 “단체협약 불이행 업주에 대해 국가보위법 위반 적용 불가” 판결 9. 1977년 3월4일 : 노동청, 저임금 기준 기본급 월 2만원 미만 명시
10. 1978년 2월21일 : 동일방직 인천 공장 ‘똥물 사건’ 발생. 노조 대의원 선거 방해 위해 여성 조합원들에게 똥물 세례 동일방직은 남성 기술직들이 어용 노동조합 간부직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1972년 한국 최초로 주길자씨를 여성 지부장으로 선출해 독자적인 집행부를 세웠다. 이에 사쪽은 폭언, 협박, 부당해고 등으로 탄압하며 노동조합 대의원 대회를 방해했고, 경찰은 주 지부장을 체포했다. 이에 조합원들이 기숙사 문을 못으로 막은 사쪽의 탄압을 뚫고 ‘지부장 석방’, ‘어용노조 무효’를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자 어용노조 간부 남성들이 똥물을 가지고 와 여성 노동자들의 입과 옷, 신체 등에 퍼부었다. 동일방식 사건은 이후 민주노조 결성 움직임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자 정치 조직 결성을 촉발했다. 11. 1978년 4월1일 : 동일방직노조 조합원 124명 집단 해고 12. 1979년 4월13일 : 와이에이치(YH)무역 5백여 종업원, 공장 폐쇄 반대 작업 거부
13. 1979년 8월9일 : 와이에이치(YH)무역 여공 2백여명, 신민당사 농성 돌입 대한민국 최대 가발 수출업체였던 와이에이치(YH)무역은 1970년대 후반 산업 구조 변화로 촉발된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일방적인 폐업 조처에 나섰다.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신민당 당사를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 1명이 추락사했다. 이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몰락하는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사건으로 김영삼 의원이 제명됐고, 이 제명 파동은 부마항쟁으로 이어져 10.26 사태를 불렀다.
14. 1979년 8월11일 : 경찰, 신민당사 난입 여공 강제 해산. 노조지부장 최순영 등 간부 3명 구속. 배후 조정 혐의 이문영 교수 등 5명 구속 15. 1980년 8월11일 :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 결성 16. 1981년 1월6일 : 서울시장, 청계피복노조에 해산명령서 발부 17. 1983년 8월27일 : 치안본부, 야학교사 관련 대학생 300명, 노동자 200명 강제 연행
18. 1985년 6월24일 : 구로 동맹파업 발발, 대우어패럴 노조간부 구속에 항의 9개 노조 파업농성 대우어패럴 노동조합 위원장 김준용에 대한 구속에 항의해 구로지역 대우어패럴·효성물산·가리봉전자·선일섬유노조 등의 노동자들이 동맹파업을 선언했다. 당시 구로지역 10개 노조, 2500여명의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탄압을 중단하라’며 시위를 벌였고, 이후 노동자·학생·재야단체가 합류했다. 구로 동맹파업은 구속자석방·노조운동탄압저지 등 정치적 요구를 내건 최초의 동맹파업으로서 이후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변혁적 노동운동을 출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 1984년 12월1일 : 최저임금법 제정 20. 1978년 3월21일 : 한국여성노동자회 창립대회 21. 1978년 5월1일 : 치안본부, 서울남부지역노동자동맹(남노련)을 “지하혁명조직”이라고 발표(13명 구속)
22. 1988년 5월2일 : 청계피복노조 강제해산 7년 만에 합법성 쟁취 전태일 분신을 계기로 결성된 청계피복노조는 1981년 전두환 정권의 ‘정화 조치’로 강제 해산되었다가, 1988년 종로구청 농성을 통해 노조의 합법화가 이루어졌다. 청계피복노조는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등의 노동자 권리를 전투적으로 제기했던 노동조합 운동의 출발이었다.
23. 1988년 7월22일 : 원진레이온 퇴직자 2명 이산화탄소 중독 판명(원진레이온 직업병투쟁 시작) 1988년 문송면(당시 나이 17살)의 수은 중독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구성된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 가족 협의회’가 노동, 보건, 의료계 관계자들과 함께 당시 국회의원 노무현 등과 사업장 노동 환경 진상 조사를 벌여 직업병 문제를 최초로 공론화했다. 산업재해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는 계기가 됐고, 산재 추방 운동의 확장을 가져왔다. 24. 1989년 3월9일 :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개정안 국회 통과(공무원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방위산업체 파업권 인정) 25. 1989년 3월22일 : 노태우 대통령,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국민의료보험법, 지방자치제법 등 4개 법안 거부권 행사 26. 1990년 1월16일 : 헌법재판소, 노동관계법상 제3자 개입금지는 “합헌” 판결 27. 1990년 12월9일 : 정부, 국제노동기구(ILO) 헌장 준수 서약서 제출, 국제노동기구 가입(152번째 회원국) 1991년 12월9일 한국은 사회정의 향상과 노동조건 개선 및 노동자 생활 수준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유엔 국제노동기구(ILO) 152번째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ILO 8개 핵심 협약 가운데 아동노동 금지·차별 금지 등 4개 협약만 비준하고 △결사의 자유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 금지 제29호와 제105호 등 4개의 협약은 비준하지 않고 있다.
28. 1995년 11월11일 : 전국민주노동조조합총연맹(민주노총) 출범 ILO 가입 이후 ILO 기본조약 비준과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 공동대책위원회(ILO 공대위)를 구성해 활동하던 노동계가 전국 1048개 노동조합, 42만 409명 조합원으로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를 결성하고 1995년 11월1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창립했다. 민주노총은 해방 이후 전개된 진보적 노동운동을 계승, 발전시킨 전국적 노동조합의 연합 조직으로 이후 민주노동당 창당의 산파 역할을 했다.
29. 1996년 12월26일 : 신한국당, 단독으로 노동법 안기부법 등 새벽 날치기 통과 지방선거 참패 이후 정국 반전을 도모하던 당시 신한국당이 관광버스를 타고 국회에 잠입해 11개 법안을 일괄 처리한 사건이다. 11개 법안이 통과되는 데는 단 7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때 통과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까지도 ‘악법’이라고 지적되는 것들이 많다. 정리해고, 대체근로제, 쟁의 기간 무임금 등이 이때 법제화됐다.
30. 1997년 11월21일 : 한국 정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지원 요청 공식 발표 1997년 12월3일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IMF로부터 2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건이다. 이후 한국은 IMF에서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하고 IMF가 요구하는 경제체제를 수용하면서 그 요구에 따라 대대적인 국가경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연쇄 부도와 대량 해고가 이어졌다. 31. 2003년 7월8일 :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 127명, 비정규노조 설립대회 32. 2003년 8월29일 : 근로기준법 개정안(주 40시간 근무제) 국회 본회의 통과 33. 2005년 1월22일 : 현대차 비정규노조 최남선 조합원, 노조인정 요구 분신 기도 34. 2005년 6월21일 :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쟁취를 위한 양대노총 결의대회
35. 2005년 9월25일 : KTX 승무원 서울노동청 점거농성
36. 2005년 11월3일 : 비정규직 관련법 국회 통과(차별금지 차별구제 규정 신설, 기간제 사용기간 2년) 2006년 11월30일 비정규직 보호 관련 3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 전환, 동일업무 비정규직 차별금지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법안 취지와 달리 이후 비정규직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했고, 사용 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2년까지는 임시직을 쓸 수 있는 법적 근거로 작동했다. 노동 유연성이 확대되며 비정규직 양산의 토대가 됐다.
37. 2009년 8월5일 : 쌍용자동차 2600여명 정리해고 단행, 경찰이 투입돼 옥쇄파업 농성장 폭력 진압 38. 2010년 1월1일 : 노조법 개정안 국회통과(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6개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1년6개월 유예) 39. 2010년 12월2일 :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4백여명 정리해고 반대파업 돌입
40. 2011년 1월6일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고공 농성 돌입 41. 2011년 2월19일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창립 선포 대회
42. 2011년 9월3일 :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 별세 43. 2012년 2월23일 : 대법원, 현대차 2년 이상 근로한 사내하청 근로자는 정규직 인정 판결 44. 2012년 12월20일 : 부당해고, 회사 압박, 대선결과 실망, 생활고 압박 등으로 노동자 연쇄 자살 45. 2013년 7월14일 :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삼성그룹 최초 노동조합 결성
46. 2015년 2월26일 : 대법원,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노동자 불법 파견 인정. KTX 승무원 한국철도공사 소속 노동자임은 부정.
47. 2017년 5월12일 : 문재인 대통령,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 선포,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천명
48. 2018년 12월12일 :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 49. 2019년 11월15일 : 서울행정법원, 택배 기사 노조법상 노동자 지위 최초 판단 50. 2020년 1월1일 : 50~299인 사업장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전면 도입 김완 김민제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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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8, 2020 at 02:59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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