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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비평
애도와 권력, 그리고 저항
몸 뺏기고 장례 못 치르는 죽음들
이건희 회장 애도 목소리 ‘대비’
공적 인물 사후 감정 표출의 정치
애도는 권력도 되고 저항도 된다
지난 26일 오후 대구 중구 인교동 삼성상회 터에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고택 인근 주민들이 이 회장을 기리고자 자발적으로 마련했다. 연합뉴스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난 다음 그를 애도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발전시켰다”(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손톱만한 반도체 위에 세계를 품으신 세계인”(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등 그의 공을 높이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최근 공적인 죽음을 놓고 벌어진 한국 사회의 애도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이 현상에 관해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의 글을 싣는다.
억울한 죽음은 여러 종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원통한 상황은 몸이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아닐까. 삶이 끝났어도 몸을 보고 인사를 건넬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때로 그렇지 못한 죽음이 있다. 2010년 당진제철소에서 일어난 사고로, 1600℃가 넘는 쇳물에서 몸을 찾지 못한 20대 청년의 죽음이 그렇다. 또 다른 억울한 죽음은 몸이 있어도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경우다. 한국마사회의 비리를 고발하고 스스로 삶을 마친 문중원 기수의 가족들은 마사회와 합의를 이룰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하다 100일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장례를 치렀다. 제때에 의식을 치르지 못하는 죽음들은 대체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 왜 죽었는지 밝혀주세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가해자를 반드시 처벌해주세요. 어떤 죽음은 몸을 빼앗긴다.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에서 수리기사로 일하던 서른네 살의 염호석이 2014년 5월 생을 마쳤다. 그는 생전에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고,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되곤 했다. 그는 자신의 장례를 노동조합 동료들에게 맡김으로써 장례 의식이 곧 정치적 행동이 되길 바랐다. 보이지 않는 인간의 죽음을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삼성전자서비스 측에서 장례 중 시신 탈취라는 경악할 짓을 벌여 노조장을 막았다. 이 세계가 사라진 몸들의 곡성으로 가득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이 곡성을 뚫고 ‘큰 별’이 졌다는, ‘거인’이 떠났다는 부고가 방방곡곡 전해진다. 이건희 별세. 그의 자리가 넓으니 떠나는 소식도 조용할 수는 없겠으나 이리저리 걸리는 게 너무 많다. “삼성 덕에 한국인이라 말하고 다녀”라는 제목으로 실린 <조선일보>(10월26일치 3면) 기사를 비롯하여 이건희와 삼성 ‘덕분에’를 외치는 목소리 때문이다. 삼성 ‘덕분에’ 외화를 벌어 우리가 ‘이만큼’ 산다, 삼성 ‘덕분에’ 외국에서 뿌듯하다 등, 졸지에 삼성에 빚진 사람들투성이가 되었다. 어떤 죽음은 죽음의 원인 자체를 밝히거나 몸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한다면, 어떤 죽음은 기억되고 싶은 방향으로 서사를 편집할 권력을 휘두른다. 권력은 굳이 직접 목소리 내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후에도 많은 이들이 고인의 ‘말씀’을 되새긴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천재 한 사람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 그의 어록에 ‘나’는 바뀌어서 교체되는 대상일 수 있으며, 2등은커녕 등수 바깥의 인물이라 기억되지 않을 것이며, 천재 뒤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심지어 이건희 전 회장은 <여성신문>에 의해 “여성 인재 중용”에 앞장섰던 인물로 활자화되었다. 인재를 중용했을진 몰라도, 삼성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씨처럼 산재 피해자가 되어 백혈병으로 스물셋에 세상을 떠난 사람은 외면했다. 삼성의 산재 피해자 중에 사망자만 118명이다. 초일류 기업 삼성은 시체를 딛고 올라 애도를 묵살하며 만들어졌다.
삼성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산다는 목소리를 들으며 박원순 ‘덕분에’ 광장이 열렸다는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보수 진영은 자본 ‘덕분에’, 진보 진영은 시민운동가 ‘덕분에’라고 한다. 박원순 사망 후 이와 같은 ‘권력형 애도’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영향력 있는 인물이 사망했을 때 슬픔과 분노 등을 느끼는 그 감정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제 슬픔을 바깥으로 표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발언권이 있는 사람들이 성폭력 사건으로 피소된 상태였던 박원순에 대한 상실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태도는 어떤 역할을 할까. 슬픔에도 위력이 있어 어떤 슬픔은 타인의 입을 봉쇄한다. 상실감을 표현하는 많은 목소리 중에서도 <한겨레>에 실린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의 글은 즉각적으로 신문에 실렸다는 점에서, 더구나 그가 ‘친구’를 호명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문제적이었다. 사적 인맥이 지배하는 공적 영역에서 ‘작은 개인들’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올해에만 택배 기사가 13명 사망했다. 택배 기사의 죽음에 ‘내 친구’를 부르짖는 목소리를 우리는 신문에서 보지 못한다. 택배 기사와 연결된 사람들 중에 발화권을 가지고 공적 지면에 즉각적으로 애도를 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다. 그런 면에서 조희연 교육감의 ‘친구 애도’가 일간지에 실린 것은 매우 부적절한 권력 행위였다. 게다가 고인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극단적 무례처럼 규정하는 시각도 있었다. 애도는 모든 것을 뒷전으로 한 채 죽음을 숭앙하는 것이 아니다. 맹목적인 애도는 오히려 죽음을 삶과 분리시켜 신비화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평생 애도하는 몸으로 살았다. 누구를? 오직 제 아버지를. 그는 어머니 육영수의 외관을 재현하며 아버지를 대리했다. 그가 언급했던 ‘부모를 흉탄에 잃고’라는 서사는 제 슬픔으로 다른 존재들을 제압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그렇기에 그의 애도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호석 열사의 영결식이 전국민주노동자장으로 엄수된 2014년 6월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 모습. 영정을 든 동료와 참석자들이 삼성 본관을 한바퀴 돌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권력자의 몸을 대리하는 초상화와 동상은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사라져도 세계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 죽은 자를 기리는 제의의 대상이며 이미지 정치의 도구다. 반면 살아 있을 때도 보이지 않던 존재는 죽은 후에도 애도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주디스 버틀러는 9·11 사건 이후 <폭력, 애도, 정치>라는 글을 통해 누가 인간인가, 누구의 삶이 삶인가, 무엇이 애도할 만한 삶이 되게 하는가를 질문한다. 왜 어떤 죽음은 언론의 커다란 부고 소식을 채우고 어떤 죽음은 전혀 알려지지 않을 뿐 아니라 애도를 방해받을까. 버틀러는 ‘존재했던 적이 없기에 애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를 생각한다.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은 “죽어 있음”의 상태로 끈질기게 살아가기에 심지어는 “죽여야 하는 존재”다. 이들을 향한 폭력은 그렇기에 폭력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공권력의 물대포, 가부장의 폭력, 산업재해 등으로 희생되는 삶은 우리 주변에 늘 유령처럼 떠돈다. 2013년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 총리가 사망했을 때 런던에 ‘The bitch is dead’(그년은 죽었다)라는 펼침막이 걸렸다. 이 여성혐오적인 문구를 나는 전혀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적인 부고’ 소식에 되받아치는 다른 목소리는 대처가 상징하는 체제 속에서 계속 죽어갔던 존재를 상기시킨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5일장과 서울특별시장(葬)에 대해 장혜영, 류호정 의원의 조문 거부 선언도 이러한 맥락이다. 한 사람의 삶을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지배적인 조문 행렬에 동참하지 않기를 선언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다른 존재의 삶을 보이게 만든다. 애도는 상실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자 하는 태도이다. 그런 면에서 작업복을 입은 류호정 의원의 모습은 매우 효과적인 ‘쇼’다. 국정감사에 이어 28일 국회 본관 앞에서도 그는 2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와 같은 작업복을 입었다. 국회라는 장소에서 권위를 가지거나 환대받는 위치에 있지 않는 이들을 대표하기(represent) 위해 재현한다(represent). 없는 존재를 ‘있음’으로 만들기 위한 긍정적인 쇼다. 애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권력 앞에서 애도는 곧 저항이다. 죽음으로 말하려 했던 이들이 저 하늘 위의 작은 별처럼 무수하다. 2003년 떠난 노동자 김주익의 유서에도, 2004년 떠난 노동자 김춘봉의 유서에도, 그리고 또 다른 노동자들의 수많은 유서에 “나 한 사람 죽어 (…) 할 수 있다면”이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살고 싶어서 죽는 사람들이다. 내 슬픔은 누구에게 등을 보이는가. 내 슬픔은 누구의 얼굴을 바라보는가. 이름 없이 공적인 얼굴을 상실한 자들을 애도하고 싶다. 1991년 부산에서 한 노동자는 팔에 다음과 같이 적고 투신자살했다. “나는 공순이가 아니고 미경이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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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1, 2020 at 07:22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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